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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대연구소 2018-05-12 15:48:50, Hit : 20
제 목   [경향신문 2018.5.12] [원희복의 인물탐구] 재일조선인역사 교수 정영환
[원희복의 인물탐구] 재일조선인역사 교수 정영환

기사입력 2018-05-12 15:03  기사원문 스크랩    

    “<제국의 위안부>는 기본사실조차 왜곡했다”

그는 2016년 <경향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저자’였다. 그는 자신의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려고 했지만 대한민국 입국이 거부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외교부 장관과 국회 외무통일위원장에게 그의 입국을 요청했지만 불허됐다. 2016년 7월 1일 민변 정연순 변호사,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 김창록 경북대 교수 등이 그의 입국 불허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재일교포로 역사학 특히 재일조선인사를 전공한 정영환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학 교수다. 그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썼다. 박근혜 정권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책을 쓴 것이 왜 ‘국가안보상 위협’이 됐을까. 그는 먼저 <경향신문>이 2016년 올해의 저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처음으로 그런 대우를 받았고, 매우 감사하고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2016년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는데 거부당했다. 사유는 ‘국가안보상의 위협’이었다. 민변에서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고등법원·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이번에 민변에서 재일 조선적 문제로 강연하기 위해 입국했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들어왔다.”

2013년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이 선고됐다. 아직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았지만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큰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 혹은 ‘학문의 자유’와 관련해 논란이 컸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저자 정영환 주간경향인터뷰./우철훈 선임기자

‘가치판단’ 아닌 학자의 자격 문제 제기

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한창 논란이 될 때인 2016년 7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이라는 책을 냈다. 사실 일본문학 전공자가 일본에서 취재와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어판(최종판)으로 쓴 <제국의 위안부>를 국내 학자나 언론이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히 박 교수가 인용한 근거를 검증하기 위해선 일본 현대사와 전쟁위안부 문제에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사실 국내 많은 학자나 언론인·작가들은 <제국의 위안부>는 일단 ‘사실’을 기록했고, 단지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라는 책에서 박 교수가 인용한 사실 상당 부분이 왜곡됐거나 선행연구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팩트’(사실)의 왜곡문제는 <제국의 위안부> 논란이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닌 학자의 자격에 대한 문제임을 의미한다. 이는 <제국의 위안부>가 표현·학문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아닌,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기본적인 팩트(사실) 왜곡은 어떤 대목인가.

“조선 위안부는 중국·대만 위안부 즉 ‘적국의 위안부’와 다른 일본 제국주의와 동지적인 ‘제국의 위안부’라는 관점을 만든 것이다. 박 교수는 그 근거로 일본 병사였던 후루야마(古山高麗雄)의 소설 <하얀 논밭>, <프레오 8시 새벽>을 들고 있다. 역사적 사실 기록이 아닌 소설을 인용했다. 그런데 인용 근거도 일본인 병사의 관점에서 ‘동지적’ 혹은 ‘자발적’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일본 병사의 관점에서 조선 여성의 내면을 보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박 교수는 조선 위안부가 아닌, 일본 병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소설 속 내용을 역사적 근거로 삼았다는 것인가. 실체적 증언이나 문헌적 근거가 없다는 것인가.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저널리스트 센다 가코오(千田夏光)가 쓴 <종군위안부>를 다시 읽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박 교수는 센다가 전쟁위안부를 ‘일본에 애국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센다의 책 어디에도 그런 주장이 없다. 센다는 원래 일본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다. 박 교수는 센다의 책에 나오는 일본 위안부 증언을 통해 조선 위안부도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해 ‘애국적 위안부’라는 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자신의 구도와 논리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부분만 추측·왜곡한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여러 학술논문도 인용되고 있다.

“박 교수는 한일회담에서 위안부 문제가 거론됐고, 한국정부가 개인보상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경북대 김창록 교수 논문을 인용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것인데 이는 김 교수의 논문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선행연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잘못된 비약이다.”(김 교수는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학문적 엄격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렇게 기본 사실에 문제가 있는 <제국의 위안부>가 어떻게 일본에서 높이 평가됐나. 특히 일본의 보수세력뿐 아니라 중도세력까지 이 책을 높게 평가했다. 일본의 지성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나.

“박 교수의 책에 대해 일본인 비판자들이 많았다. 특히 전쟁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용을 알기 때문에 즉각 비판했다. 아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상대를 안했다. 그러나 이 책이 다시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번역 출판됐고, 와세다대학에서 상을 받았다. 문제는 일본의 보수파가 아닌 중도 심지어 진보적 성향까지 <제국의 위안부>를 평가한 배경을 잘 봐야 한다.”

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소위 ‘뜨게’ 된 일본의 분위기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무라야마(村山富市) 전 총리는 1995년 아시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하고 위로하는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추진했다. 일본 중도적인 인사들이 추진했던 이 사업은 한국에서만큼은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의 중도적 인사들은 ‘한국의 민족주의가 너무 강하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의 책은 바로 이 ‘한국 민족주의가 문제’라는 담론을 한국인이 만들어 줘 좋아했다는 것이다.

정영환 교수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우철훈 선임기자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서 호평 받은 이유

정 교수는 “일본 <아사히신문>은 2000년대 들어 일본 보수파로부터 심각한 공격을 받아 전쟁범죄에 대한 시각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 맥락을 이해하려면 일본에서 전쟁위안부에 대한 인식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80년대까지 일본에서 전쟁위안부는 일종의 전쟁 추억 혹은 에피소드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고발로 전쟁위안부 문제가 전쟁범죄로 옮아갔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으로선 당연히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무라야마 전 총리의 정부 차원 사과와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등의 치유책이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전쟁위안부 문제를 보는 시각을 80년대 ‘추억’이나 ‘동지’로 보는 시각으로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은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이 책을 출판하고 일본 언론에서 호평 받은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 내 호평은 “일본 우경화와 일본의 지적 퇴락의 종착점”이라고 힐난했다. 이러한 일본 분위기를 이해해야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박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가 사법심사 대상이 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 혹은 ‘학문의 자유’라는 이유로 그를 옹호했다. 일본은 물론 국내 유명 인사들도 적잖이 이에 동조했다. 그중 상당수는 박근혜 정권에서 뉴라이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유명 작가도 있었다. 아마 그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확실한 증언과 객관적 인용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조총련계 민족학교 다녀

박근혜 정권은 친일 묘사가 가득한 교학사 교과서에 실패하자 아예 국정 역사교과서를 도입하려 했다. 특히 한·일 위안부 문제를 10억 엔에 ‘불가역적’으로 재론 않겠다고 일본과 합의했다. 이 졸속협상은 국민을 분노케 했고, 결국 촛불혁명에서 적잖은 동인이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서 호평을 받으며 출간됐고, 거꾸로 이를 비판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쓴 정 교수의 국내 입국이 거부된 것이다. 그 입국 거부 사유를 ‘국가안보상 위협’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박 정권의 역사왜곡에 걸림돌’이라는 것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에서 호평을 받은 이유와 한·일 위안부 합의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베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 언론 모두 호평을 했다. 이를 반대하는 한국인은 비이성적 태도라고 보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일본 시각과 구도에 딱 맞는 책이었던 것이다.”

-박 교수는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유죄가 선고됐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음~. 어려운 질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 책을 통해서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형법상 명예훼손이 되는지는 내가 판단하기 어렵다. 역사학자의 견해와 실정법은 다르기 때문에 일단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문학 전공자로서 박유하의 일본에서의 학문적 평가는 어떤가.

“문학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겠지만 높게 평가 받는다. 아마 박 교수는 일본 출판·언론계에서 한국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정 교수는 1980년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경남 고성이 고향으로 1930년대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할아버지는 조선인 여성을 만나 8남매를 낳았다. 아버지 역시 조선인 여성과 결혼했다. 정 교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열렬한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조총련계 커뮤니티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 역시 고등학교까지 조총련의 민족학교를 다녔다. 1999년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히토쓰바시(一橋)대학원에서 재일조선인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재일교포는 60만명이다. 법적으로 외국인 등록 국적란에 조선으로 쓰면 조선적, 한국이라고 쓰면 한국국적이다. 이 중 조선적은 3만명 정도라고 한다. 그는 “재일 조선적은 외국인으로 차별을 받고, 여권이 없어 또 차별 받는 2중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기자가 1994년 쓴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을 읽고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기자가 쓴 평전은 재일교포 조용수의 1950년대 일본과 한국 관계에 대해 언급돼 있다.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앞선 경제력으로 일본 교포사회에 학교와 직장을 제공했고, 심지어 집과 직장을 제공한다며 북한 이주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남한 재일공사 유태하는 귀국하려는 재일교포를 상대로 여권장사를 해 비난을 받았다. 이 유태하 공사는 5·16 쿠데타 후 처벌 받았지만 나중에 한·일 국교정상화에 역할을 했다. 재일교포의 상당수가 남한 출신이었지만 조선적으로 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 교수는 기자의 이런 서술에 “정확한 사실이며 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의 경제력이 역전돼 조총련이 북한에 경제지원을 하는 형편이 됐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귀화하거나, 한국 국적을 얻기 싫다고 했다.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선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심경은 바로 ‘굴복하기 싫다’는 것”이라며 “특히 지금까지 삶과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싫고, 국적 취득은 허가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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